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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팬 리뷰 Japan Review

아베 연설에 주목한 理由

아베 연설에 주목한 理由


입력 : 2015.03.03 03:00  chosun.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얼마 전 국회에서 시정(施政)연설을 했다. 내용은 뻔하다. 헌법 개정 본격화와 소비세 인상 같은 기존의 정치·경제정책을 다시 천명했다. '강한 일본'을 꿈꾸는 아베 총리의 그간 행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연설 방식이다.

아베 총리는 연설에서 일본 근대사의 인물 네 명을 언급했다. 첫째 인물은 메이지(明治)유신의 주역인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1825~1883)다. 아베 총리는 연설 모두(冒頭)에서 이와쿠라가 1871~1873년 유럽과 미국을 시찰하며 "일본이 세계에서 활약하는 나라가 되는 것도 결코 어렵지 않다"고 했던 말을 소개한 뒤 "경제 살리기라는 어려운 길에 도전해 다시 발걸음을 내디딜 때"라고 말했다.

둘째 인물은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나왔다. 일본 근대미술을 이끈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1862~1913)이 저서 '차(茶)의 책'에 쓴 "변화야말로 유일하게 영원한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개혁의 길에 나서자고 촉구했다.

이어 실천을 강조하면서 에도(江戶)막부 말기의 사상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이 "앎과 행동은 둘이면서 하나"라고 했던 말을 언급한 뒤 "이번 국회가 할 일은 비판에 흔들리지 않는 행동"이라고 호소했다.

끝으로 "경기 침체의 최대 문제는 일본 국민이 자신감을 잃은 것"이라고 지적하고 전후(戰後) 일본을 재건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1878~1967) 총리가 회고록 '회상의 10년'에서 "일본 국민이여, 자신감을 가져라"고 했던 말을 적시했다. 아베 총리는 "쇼와(昭和) 시대 일본인이 했던 일을 지금의 일본인이 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가 언급한 인물들을 통해 현재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 편하지는 않다. 요시다 쇼인은 일본이 한국을 정복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의 원조였다. 그의 제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스승의 침략주의를 실천해 한국을 강제 병합했다.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이웃 나라를 침략해야 한다는 사상은 죄악이다.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에서 활약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개혁에 자신감을 갖고 실천에 나서자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지금의 일본을 만든 역사 인물을 두루 인용한 방식은 일본 국민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NHK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그 전달보다 4% 높은 54%를 기록했다.

과문(寡聞)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정치 지도자가 대한민국을 만든 인물들을 언급하며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낸 적이 있었는지 듣지 못했다. 야당 대표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를 이끈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처음 찾은 데 대해 '히틀러 참배'라는 험한 비난이 나오는 상황이다. 세계에서 활약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과거 한국인이 노력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 국민도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자신감을 불어넣는 정치 지도자를 보고 싶다.

[출처] 조선닷컴・이한수 문화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3/02/2015030204048.html